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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캔 스피크 관련 사진

    1. 민원의 달인 나옥분

    새로운 구청으로 첫 출근한 9급 공무원 민재.

    - 민재 : "종합 민원실로 발령받은 박민재라고 합니다"
    처음 만난 동료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9시 정각 업무를 시작합니다. 정장에 나가는 무사가 칼을 뽑듯 그날 쓸 사무용품을 뽑아 각부터 잡는 민재는 가르마까지 데칼코마니로 평등 분배하는 원칙주의자였죠.
    나타났다 하면 구청 직원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민원의 달인 나옥분여사, 일명 도깨비 할머니입니다.
    - 옥분 : "역시 또 비 오는 날에 나타났어. 어제 비 왔잖아"
    이 날도 어김없이 새로운 민원을 들고 왔는데 
    - 팀장 : "앞으로 저희들이 잘 알아서 할 테니까요..."
    - 옥분 :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하여튼 이 나라 공무원 놈들!!"
    찰칵- 그때 이  판에 불쑥 끼어든 민재.
    - 옥분 : "지금 뭐 하는 짓이야?"
    - 민재 : "민원 관련 증거수집 입수 과정도 기록에 남겨야 합니다"
    '요 녀석 봐라?' 하는 표정으로 옥분이 다가오자 민재는 다시 한번 원칙과 절차로 맞섭니다.
    - 옥분 : "내가 먼저 왔는데?"
    - 민재 : "이제부터 번호표 뽑으세요"
    구청이 아니면 절대 볼 일 없을 것 같은 두 주인공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구청에선 블랙리스트 시장에선 오지라퍼로 그 누구보다 거칠지만 홀로 수선집에 있을 때에 옥분은 그 누구보다 외로운 옥분입니다. 삶의 대부분을 가족 없이 홀로 지냈기 때문이죠. 오래전에 헤어진 남동생 정남은 미국에서 지내는데 이제 와 안부라도 주고받으려면 영어가 필수입니다. 그래서 옥분은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영어 선생님을 찾아다녔죠. 그때 가까이서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 원어민 강사 : "그만둔다고?"
    - 민재 : "언제 밖에서 식사라도 한번 하자 우리 구청 앞에 맛집이 많아"
    뒤에서 대화를 듣던 옥분은 생각했습니다. '그토록 찾아 헤맨 영어 선생님이 여기 있었다니!!'라고요.
    - 옥분 : "나 영어 가르쳐줘"
    부탁도 민원처럼 앞뒤 없이 직구로 던지는 옥분. 영어 하나로 두 사람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었죠. 
    - 민재 : "맘 같아선 정말 가르쳐 드리고 싶은데요 할머니께서 넣으신 민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도저히 시간이 안 나네요 죄송합니다"
    며칠 전
    - 민재 : "17번 민원인분!! 접수되셨습니다 다음 18번 민원인분?"
    - 옥분 : "응 이번에도 나!"
    민재를 골려 줄 생각으로 민원 대란을 일으켰던 게 화근이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 날 옥분이 아니었죠.
    한 손엔 영어책을 다른 한 손에는 인절미를 들고 구청 소파에서 무언의 시위를 하는 도깨비 할머니. 참다못한 민재는 옥분에게 다가가 
    - 민재 : "할머니 이러시는 거 공무집행 방해예요"
    - 옥분 : "진짜 못 해주겠다 이거야?"
    - 민재 : "예 저 못합니다"
    - 옥분 : "각오해!!"
    민원서류로 협박하는 통에 민재는 어쩔 수 없이 조건부 영어수업을 약속했습니다. 그 조건은 옥분이 단어시험에서 80점 이상의 점수를 맞는 거였죠. 외우기 어려운 긴 단어들만 골라 문제를 냈는데도 꽤 정답을 많이 맞힌 옥분. 하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75점.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동생을 본 민재. 그는 어두운 시장 골목으로 자꾸 들어가는 동생이 수상해 뒤를 쫓다가 어느 수선집에 다다르죠. 그리고 천천히 안을 들여다보는데 그동안 옥분이 친할머니처럼 동생의 저녁밥을 챙겨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재는 집을 둘러보다 영어에 대한 옥분의 열정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민재 : "월수금 주 3일이면 되겠죠? 돈은 안 받습니다 돈 주실 거면 저 안 해요"
    민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민재는 옥분이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재밌게 가르쳤습니다. 한편 친구 정심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옥분. 영화는 이쯤에서 옥분이 왜 그렇게 영어를 배우려 했는지 그 숨은 이유를 조심히 꺼내놓습니다.
    - 옥분 : "잊고 싶은 과거지만 그 사진을 버리지 않았어"
    위안부 당시의 사진이었습니다. 정심과 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였습니다. 
    - 옥분 : "정심이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열심히 증언을 하고 다녔지"
    하지만 옥분은 그 상처를 계속 숨기며 살아왔던 것이었죠. 그 당시 옥분의 겪은 비극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의 망신으로 취급됐습니다. 죽을 때까지 얘기하지 말라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옥분의 부모였죠. 하지만 이제 옥분은 정심의 자리를 빌려 오랜 세월 숨겨 둔 상처를 만인 앞에 당당히 얘기하려 합니다.

    2. 실제 주인공 이용순 할머니 

    <아이 캔 스피크>는 사실인가?  픽션인가요? 
    - 픽션이 많이 섞여 있지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이용수 할머니가 도깨비 할머니처럼 독특하십니다.
    실제 이용수 할머니의 특징이 있는데요.
    1. 안경을 꼈다
    2. 문병을 다닐 만큼 건강하다
    3. 도깨비처럼 성격이 강직하다
    이용수 할머니는 변영주감독이 영화를 찍을 때부터 계속 옆에 오셨다고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게 나인데 왜 다른 사람을 찍어?" 라면서 요. 이 얘기에서 넘치는 자신감이 옥분이 그 자체인 거 같았습니다. 어떤 성격인지 대충 감이 왔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서 가장 건강하셔서 그러다 보니까 본인이 나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앞장서서 활동하셨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공격하는 위안부 피해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가장 열심히 활동하시니까 그런 거 같습니다. 2007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의 경험을 생생하게 증언하였고 모든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보호해야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는 특히 일본의 집중 공격을 받기 때문에 각별한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위안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얼굴과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니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나문희 배우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대변하는 연기로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나문희 배우는 여우주연상 & 인기스타상으로 청룡영화상 2관왕을 거뒀습니다. "여배우들의 자존심이라기보다는 할머니들의 희망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나문희 배우의 수상소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3. "I'm sorry"

    영화를 좀 더 들여다보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타이틀 자막의 'I'자를 덧칠한 것 역시 후반부에 본격화되는 내용과 메시지를 암시하기 위해서죠. 대부분의 위안부 영화들을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며 분위기를 진중하게 가져가는데 반해 <아이 캔 스피크>는 강도와 리듬이 잘 조율된 코미디를 전면 배치해 소재의 무게감을 조심스럽게 덜어냅니다. 관객들이 좀 더 다가가기 쉽도록 문턱을 낮춘 겁니다. 또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으로 그려내면서 그들이 겪은 비극이 나와 다른 시대를 지난 사람들의 특별한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I'm so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후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인정하고 사과하시오."
    위안부에 대한 우리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면서도 대중영화로서의 재미와 감동도 놓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극 중 옥분 할머니가 청문회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장면이었는데 
    - 옥분 : "I'm standing here today for those young girls(저는 오늘 수많은 소년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Their childhoods were stolen away(그들의 어린 시절을 짓밟혔습니다"
    "by the crimes of the hapanese army(일본군의 만행 때문에)"
    이 대사는 나문희 배우가 대본의 도움 없이 영어 대사를 100% 암기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옥분 할머니의 증언을 들은 미국 의원들은 진심 어린 말로 "I'm sorry"라며 말했다고 해요.
    진실이 모든 것을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선하게 만드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저는 굉장히 감동했습니다. 전쟁 범죄는 시효가 없는데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늦게나마 사과를 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네요.
    마지막까지 가슴이 먹먹해진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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